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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슬퍼런 용머리의위용

페이지 정보

작성자 안개 조회 309회 작성일 24-05-19 19:17

본문

청춘이여서 아름다운 시절

부산 해운대에 직장을 잡고 명절때 마다 고향을 향한 귀성버스에 몸을 싣고 하루종일 걸리는 고향길이지만 선물 꾸러미를 지닌 발걸음은 셀렘으로 가득하였다.

그립고 그리운 부모님을 만나고 형제자매들을 볼 수 있는 즐거움과 마음을 주고 받는 친구들과의 만남으로 명절 휴가는 언제나 짧기만 했다.


창영호가 운항하던 겨울 설이였다

설명절을 즐기고 부산으로 귀경을 해야하는데 태풍이 온다는 일기예보가 날아 들었다

부모님은 벌써부터 걱정을 하시며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고 계셨다

일기 속보가 날아 오는대로 말씀 해 주시며 아마도 낼은 창영호가 뜨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하셨다.

하루 더 놀고 가고 싶은 마음 굴뚝 같으나 태풍이 하루만에 잔잔 해 질리 없고 사나흘 지나야 육지로 나갈 수 있을 터인데 그렇게 되면 직장에 지장을 줄게 물보듯 뻔하다.


밤을 새다 시피 정보를 나르던 아버지께서 바람이 세차서 창영호가 용머리를 넘을 수 없으니 초포에서 월호까지 종선을 타고 간다는 정보를 입수하여 빨리 준비하여 추깡으로 나오라고 하셨다.

분무꼴 추깡으로 나가보니 귀경하는 사람들로 종선은 이미 만원 이었다

여명 무렵이라 누가 누군지 분간이 안돼 대충 인사를 하고  배 앞머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으나 불안하였다.


종선 쥔장이 모두 앉으라 하고선 시동을 걸어 초포 보돌바다를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양지포마을 부근에 다다르니 너울성 파도가 일기 시작하였다

바다를 쳐다만 봐도 멀미가 나고 너울성 파도에 잔득 겁을 먹은 사람들은 파도가 칠때마다 여기저기서 두려운 소리를 내기 시작 하였다

날이 새면서 종선에 가득찬 사람들이 두어명 빼고 모두 남자분들이였음을 알게 되었다.

양지포 넘어 아홉굴을 지나 용머리를 향한 종선은 너울성파도에 갈피를 잡지 못해 요란하게 흔들리다 중심을 잡고 나아 가기를 반복하다 용머리에 다다랐을 무렵 큰파도와 함께 종선의 앞머리가 하늘로 솟구치는 찰나 배앞머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기관실 후미쪽으로 모두 소리를 지르며 달아났다.


종선은 하늘로 솟구쳤다 바다로 떨어지며 겨우 중심을 잡았으나 종선의 후미를 따라가지 못한 나는 파도를 뒤집어 쓰고 온몸이 얼어 두발이 배 밑창에 달라 붙어 옴짝달싹도 못하게 되었다.

너울성 파도 한방으로 종선에는 물이 가득 찼고 덩그마니 서서 두려움과 서러움에 벌벌 떨고 있는 나를 종선 후미의 사람들은 겁에 질린체 모두 구경만하고 있었다.

누구하나 괜찮냐고 물어준 사람도 없고 괜찮으니 후미쪽으로 오라는 사람도 없이 용머리를 넘어 갈때까지 파도에 흔들리며 너울성 파도를 뒤집어 쓰고 물에 빠진 생쥐꼴로 홀로 서있었다.


그날, 초포 보돌바다와 용머리의 위용을  잘 아시는 울아버지는 딸을 종선에 태워 놓고 며칠 동안 몸살을 앓으셨다고 하셨다

요즘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초포에서 출발하여 용머리 바위틈을 지나 항금이 월호 개도 여수까지의 바다숲을 죽을듯 살듯 헤엄을 치다 깨어나곤 한다.

그러나, 그날의 경험이 나쁘지만은 않다

간혹 힘들게 꿈을 꾸는 것 외에 인생 여정에 깊이를 더해주는 아련한 그 무엇이 늘 작용한다.

댓글목록

<span class="guest">요수</span>님의 댓글

요수 작성일

심포에선 일종고지 끝부분 뒤쪽이 파도가 거세게 이는데

초포쪽은 용머리 넘기가 어려운가 보네요.

하긴 둘다 지형이 돌출되어 바람 파도의 밥이라 할수 있겠죠.

용머리 아홉굴을 보면 무서운 파도에 깎이고 뚫어놓은 흔적이겠지요,

글이 이해가 가는군요,^^

예전 종선타고 객선에 오르내리기 힘들고 무서웠던 시절이며

명절때 고향행 열차 선반에 가족에 줄 선물꾸러미 올려놓고 도둑맞을까봐 

5분만에 한번씩 올려다 보던 과거일들까지

되새겨 보게되는 안개님 글이네요. 

안개님의 댓글의 댓글

안개 작성일

그옛날 그시절이 추억이되어

한나씩 꺼내보면

아름다움도 있고 애틋함도 있고 무모함도 있었네요.

그러나 그시절은 

그런 선택이 최선인줄 알았겠지요.

용머리 유명한 곳이였죠~~

<span class="guest">미리</span>님의 댓글

미리 작성일

창영호처럼 큰 배도 못 넘는 용머리 물살을 종선이 갈 생각을 무모하다 해야 할까요 용감하다 해야 할까요.

그 땐 뭣이 중한지를 모르진 않았을텐데 왜 그랬을까요.

안개님의 댓글의 댓글

안개 작성일

육지로 나가야 할 절박한 상황과

용머리위용의 한계점을 잘 몰랐지 싶어요

태풍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에

너울성파도의 크기도 잘 몰랐지 싶어요

무모함 용기 둘다였겠지요.

경험이 없었던 지는 오로지 직장만 생각하고 무지였습니다.ㅎㅎ

<span class="guest">애린</span>님의 댓글

애린 작성일

사람이나 자연이나

다른 성격의 사고방식을 흡수해야 할 때는

이렇게 엄청난 충돌이 있나봅니다.

더욱이 성이날 때

보돌바다와 금오수도의 팽팽한 긴장감은 

상상만으로 오싹합니다.


돌산에서 서고지 갈 때도 그랬네요.

너무 작은 보트를 탔는데

집에 도착하니 허리가 너무 아팠어요.

무섭고 두려운 그 파도밭을 

목숨을 걸지 않으면 탈 수 없다는 걸

그때는 모른다기보다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안개님의 댓글의 댓글

안개 작성일

중학교 다닐때

비가 오거나 태풍이 불면 안도에 살던 학생들은 수업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일찍 하교했었던 기억이 나요

파도가 일면

어느지점에서 소용돌이 파도가 일어 위험하다고 들었는데

모두 걱정하며 안전하기를 기도하던 친구들의 모습을 봤거든요.

<span class="guest">향기</span>님의 댓글

향기 작성일

바다가 고향이어서 불편했던것은 태풍주의보였지요~

주의보가 내리면 오갈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안개님의 글을 숨 죽여 읽었네요~

휴~~우~다행이다 싶었어요~너울성 파도에 배가 뒤집히기라도 했으면 어쩔뻔 했어요~~

어려운 상황들을 잘 이겨 냈기에

금오도가 고향인 우리들은 오늘도

힘차게 살아가는가 봅니다~^^


안개님의 댓글

안개 작성일

월요일 정신없이 일처리를 하고 나니 

이제사 한숨 돌릴 시간이 허락되네요.

해맑은 월요일 향기언니 반갑습니다^^

그때, 그시절이 아련하지요

그래도 그때가 그리워요

청춘이라 그런 걸까요~

언제나 따스함으로 보듬어 주는 언니가 있어 

감사하고 즐거운 공간입니다.

오늘도 해피하세요~

오아시스님의 댓글

오아시스 작성일

용머리만 지나면 도회지로 나갈것 같은

검푸르게 변하는 파도가 무서웠답니다

자연과  살아냈던 부모님이 계시고

그 모습을 보며 성장했기에

때로는 

이까잇것하면서 살아 온듯합니다


어둠이 발아래서 질척거려도

둑이 터져서 물이 턱밑까지 차올라도

"자연의 태풍은 강해도 삼일을 못 가고

인생의 태풍은 모질어도 삼 년을 못 간다"


용머리에  환상적인 절경은

그 냥 만들어진것은 아니라고



안개님의 댓글

안개 작성일

"자연의 태풍은 강해도 3일을 못가고

인생의 태풍은 모질어도 삼년은 못간다"

오아시스님 어록이네요

앞으로 남은 인생도 "이까잇것"

하면서 살아봐요

반드시 좋은날이 올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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